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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의 퍼스펙티브] 정부의 공기업 통제 강화는 국제 흐름에 어긋난다. (서울대 이재민 교수)
국제통상학회
2019-03-22 16:34:28
공공기관과 국제 규범
2017년 개봉된 톰 크루즈 주연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American Made)’는 1980년대 초반 미국의 눈물겨운 노력을 그린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중미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비밀리에 지원하며 미국 정부 관련 사실을  숨기기 위한 사투를 보여준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의 노력도 비슷하다. 민간인들을 동원하며 정부는 뒤에 숨는다. 정부가 사라지면 상대방의 국제법 위반 주장을 벗어나기 쉬운 까닭이다.  
   

국제사회, 정부 대신해 움직이는
국영기업 규제 강화하는 추세
정부 통제 상태로 시장 참여하면
국영기업에 해당해 통상 규제

공기업 등의 낙하산 인사와
경영에 대한 직접적 개입은
새로운 국제 흐름에 어긋나
시장원칙 따른 운영 보장해야

조약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 체결되는 조약도 특별한 합의가 없는 한 정부에만 적용된다. 그러니 조약 체결 후 골치 아픈 이행을 피하는 쉬운 길은 무엇인가. 정부 대신 누군가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홀연히 정부가 원하는 일을 추진한다. 목표는 달성되고 조약 위반 문제는 꼭꼭 숨겨진다. 지금 국제사회 여러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양태다. 당연히 분쟁으로 이어진다. 순수 민간형이냐, 정부 은닉형이냐를 두고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국영기업 규제에 국제 공감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 모델은 통상조약에서도 단골 메뉴다. 누군가가 정부 대신 나서고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분쟁에서도 중국 정부는 사라지고 여행사만 남지 않았던가. 지금 이 문제 해결이 통상조약의 핵심 과제가 되었다. “국영기업(State-Owned Enterprises)”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통상조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국영기업이 바로 정부의 대리인처럼 움직이니 이를 직접 규제하려는 시도다.  
   
국영기업이라니? 이상하다. 국영기업은 공산주의 체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대부분의 국가는 그럼 해당 사항이 없는가? 그 이름에 미혹되지 말자. 여기서 말하는 국영기업은 실로 광범위하다.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하한 방식으로든 국가가 통제권을 행사하는 모든 기업이 해당한다. “여하한 방식으로든”에 방점이 있다. 요컨대 법률상이든 사실상이든 정부가 통제권을 행사하는지 본다. 그리고 그다음 이들이 돌아서서 민간 시장에 참여하는지 살핀다. 정부 통제와 민간 시장 참여, 이 두 가지만 갖추면 국영기업에 해당한다. 아주 넓다.  
   
우리 사정은 어떤가? 국영기업을 우리 식으로 풀면 공사·공단·기금·국책은행·재단·진흥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소위 ‘공공기관’이 여기 해당한다. 정부는 지분을 보유하고, 기관장과 주요 임원진을 결정하며 통제권을 행사한다. 그리고 들쭉날쭉하나, 이들은 민간 시장에도 참여한다. 바로 위 두 가지 조건이다.  
   
그럼 우리 ‘공공기관’을 한번 보자. 지난 1월 30일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공공기관은 모두 339개다. 이 중 공기업이 36개, 준정부기관이 93개, 기타 공공기관이 210개다.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이들을 관리·감독한다. 이들 339개 공공기관 중 보수적으로 잡아도 얼추 100여 개가 국영기업의 언저리에 들락날락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사회 곳곳에 위치한 100여 개의 공공기관에 이제 통상조약이 처음으로, 그리고 직접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그 파장은 적지 않다. 이들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정부·공공기관 협조체제에 엄격한 잣대 
   
최신 통상조약은 국영기업 규범을 별도의 장(chapter)으로 대거 도입하고 있다. 지난 연말 발효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CPTPP)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신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 대표적이다. 국영기업과 관련해 각각 34쪽과 29쪽에 달하는 상세한 내용을 적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이 문제는 지금 제도 개선 맥락에서 활발하게 논의 중이라 머지않아 유사한 규범이 도입될 분위기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주요 국가 간에 확산되는 공감대다. 통상조약의 새로운 추세가 되었다.  
   
사실 이 논의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경쟁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논의를 시작한 때가 2005년이니 벌써 14년 전이다. 지금 보는 새로운 룰이 급조된 것이 아니라 숙성의 결과임을 의미한다. 이 분야 국제적 공감대의 바탕을 이룬다. 새로운 규범의 골자는 이렇다. 먼저 정부의 국영기업 지원을 규제한다. 국영기업 상호 간 상부상조도 제한한다. 시장에서 국영기업들의 차별적·비상업적 거래 관행도 규제한다. 특히 외국 상품·서비스·투자에 대한 차별이 주된 규제 대상이다.  
   
동시에 빠져나가는 방법도 제시한다. 바로 시장 원칙이다. 정부와 국영기업 간 거래, 국영기업 상호 간 거래도 상업적 기준에 따라서만 진행되면 아무 문제 없다. 시장에서의 잣대로 이들을 보는 것이다. 또 정부가 정부로서 해야 할 일은 당연히 허용한다. 국영기업에 대한 정부의 일반적인 관리·감독이 대표적이다. 다만 그것과 정부가 이들을 이용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구별한다. 만약 시장에 개입할 때는 상업적 기준, 바로 시장 원칙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정부 공공기관 통제는 한국의 아킬레스건 
   
우리에겐 달갑지 않은 변화다. 아픈 부분을 찌른다. 공공기관 특히 공기업에 대한 낙하산 인사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불거지지 않는가. 여러 공사·공단들은 주무 부처와 밀접한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정부 정책을 위해 국내외에서 동분서주한다. 해외 자원 개발에서 창조 경제로, 그리고 에너지 정책으로 주문도 계속 바뀐다. 관련 부처는 측면에서 지원하고, 이들은 돌아서서 다른 공공기관을 이끈다.  
   
동시에 수익 창출을 위해 시장 참여도 적극적이다. 어쩔 수 없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매년 경영성과를 평가하니. 정부 정책도 수행하고 돈도 벌어야 하는, 국영기업 챕터가 겨냥하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최근 몇몇 사례를 한번 보자. 살짝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의 통제·개입이 꾸준히 강화되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국제적 흐름과는 반대 방향이다.  
   
국민연금 기업 견제 신중해야 
   
먼저 연기금 문제다. 공공기관 339개 중 14개는 연기금이다. 국민연금이 대표적이다. 지금 국민연금 보유 지분으로 민간 기업을 견제하겠다는 계획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사 결정은 기금운용위원회가 담당하고  그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공단 이사장도 정부가 임명한다. 국민연금은 601조원의 자금을 굴리는 민간 시장의 큰손이다. 수익을 위해 투자한다. 결국 국민연금도 지금 논의 기준에 따르면 국영기업 범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를 통한 민간 영역에의 개입은 지금 새로운 규범과는 다른 길이다.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새로 들어오는 국영기업 규범에는 연금 예외 조항이 있다. 공공적 성격을 인정해 연금은 봐주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연금이 정부의 ‘투자 지시’에 따르는 경우에는 이 예외가 적용되지 않도록 단서를 달아두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국책 금융기관들도 한번 보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국책 금융기관들을 ‘공기업’으로 지정하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국내법상 공기업으로 분류해 관리·감독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올 1월 30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일단 유예되었으나 매년 평가가 이루어지니 여전히 앞으로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국책은행 관리 문제도 주요 쟁점 
   
본질이 금융기관인 이들을 공기업으로 변경하여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 역시 세계 흐름과 반대로 가는 길이다. 국영기업에 해당함을 우리 스스로 손을 들고 명확히 함과 동시에, 당장 산업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주요 업체에 대한 구조조정과 기업 인수·합병(M&A)에도 장기적 영향을 끼친다. 국영기업이 소유한 기업도 국영기업으로 간주하니 이들이 지분을 소유한 민간 기업도 이 수렁에 빠져 들어갈 위험성을 자초하게 된다.  
   

지난 2월 20일에는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종합 검사가 부활했다. 정부 지분 소유 금융기관들에 대해 일상적인 감사를 넘어 경영에 개입하면 이 역시 복잡한 문제를 초래한다. 이들이 시장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지 의문이 따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개혁은 더없이 중요한 과제다. 최근 드러난 채용 비리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강력한 감시와 감독이 요구된다. 그러나 감시와 감독은 법령·규정·내규의 준수 여부 등 일반적인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실제 영업 활동에서 의사 결정은 이와 다르다. 거래든, 대출이든, 채무 재조정이든, 투자든 구체적인 사안의 결정은 시장 원칙에 따르도록 공공기관에 맡겨야 한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새로 도입되는 국영기업 규범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대체로 그러한 흐름에 발걸음을 맞춰 나가야 한다. 이 문제는 새로운 통상조약이 이전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다. 법령·제도 개선을 필두로 면밀한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앞으로 CPTPP 가입이든, WTO 협상이든 새로운 통상조약 논의의 첫 번째 과제가 된다. 늦기 전에 서두르자.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통상분과 위원 

[출처: 중앙일보] [이재민의 퍼스펙티브] 정부의 공기업 통제 강화는 국제 흐름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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