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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기업 활력 없이 ‘富國’ 난망 혁신·창의성부터 키워야 (숙명여대 강인수 교수)
국제통상학회
2019-04-23 15:18:44
한 국가의 번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 지리·문화·제도적 요인을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소득 수준이 높은 국가 대부분이 열대 지역이 아닌 온대 지역에 위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별 번영의 차이가 기후, 자원 같은 지리적 요인 때문에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전 세계에서 관측되는 번영의 차이가 서로 다른 가치관과 문화적 신념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실증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제도의 차이를 강조한 세 번째 주장이다. 즉, 사회가 스스로를 조직하고 개인·기업 인센티브를 형성하는 방식(소위 경제적 게임의 룰)에 따라 국가 번영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최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영국이 제도적 요인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례다. 영국은 18세기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에 성공하면서 19세기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그 배경에는 1760~1815년 사이에 빠르게 진행된 농업혁명에 따른 농업 생산성 증가, 농업인구 감소에 따른 잉여 노동력의 산업 부문 유입 확대가 자리한다. 

울타리가 없던 공유지에 울타리를 만들어 영주의 개인 소유지로 만들어나갔던 ‘인클로저 운동’이 확산되면서 인구의 절반 정도가 자기 소유지가 없는 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영국은 장자 상속제가 유지됐기 때문에 대토지 소유로 새로운 영농 기술 도입이 가능했다. 또한, 재능 있는 차남 이하 귀족 자제가 상공업에 진출했기 때문에 토지 소유가 아닌 ‘부의 생산과 축적’이 사회적 출세의 기준이 됐다.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법치주의가 확립되면서 사유재산 보호와 기업활동 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구축됐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이 독일과 미국에 자리를 내준 것도 제도적 요인 때문이다. 1865년 제정된 영국의 적기조례(Red Flag Act)를 들 수 있다. 이 조례는 영국이 증기자동차라는 혁신적인 운송수단을 가장 먼저 상용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마차산업 보호를 위해 마차보다 빨리 가지 못하도록 속도 제한을 함으로써 산업화 실패를 자초한 것으로 평가된다. 

1970년대 만연했던 영국병과 이를 극복한 대처리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의미하듯 당시 영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광범위한 복지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 결과 1979년 복지예산이 전체 예산의 45.7%일 정도로 과도한 비중을 차지했다. 기계화,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고임금과 고용 유지를 주장한 강성 노조로 경제 효율성은 크게 떨어졌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효시가 된 대처리즘 이행 과정은 단기적으로는 빈곤율 증가와 소득 양극화 심화 등 고통을 수반했다. 약 10만명의 공무원 감축, 과감한 민영화, 대폭적인 정부 예산 삭감과 같은 공공부문 개혁이 단행됐다. 노조에 단호하게 대처했지만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종업원지주제, 기업 이윤 분배제도를 통해 노동자의 기본 권익과 소득 향상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시장경제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최소한의 정부 개입을 통해 무질서한 시장에 도덕성을 부여하고 공적 이익에 부합하도록 유도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1349달러로 처음 3만달러를 넘어섰다. 2006년 2만달러를 넘어선 이후 12년 만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의 성장은 더욱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가 번영을 위해서는 혁신과 창의성을 촉진하는 제도적 기반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3호 (2019.04.10~2019.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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