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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칼럼소개 (최병일 교수- [다산 칼럼] '안미경중(安美經中)'이란 몽상, 한국경제)
국제통상학회
2018-02-23 21: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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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어설픈 행보
중국 사드보복에 미국 관세폭탄까지 신뢰만 잃어
통상·안보 밀월시대 끝나… 새 해법 찾아야

최병일 <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


예고된 참사였다. “무역수지 적자는 미국 일자리를 뺏는 나쁜 것”이라고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이미 세상은 바뀌었다. 일자리를 빼앗긴 미국 중서부의 쇠락한 공업지역 유권자를 향한 그의 ‘쇼통’에 한국이 휘청거린다. 트럼프는 연초에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전지·모듈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더니 철강에도 수입 제재를 내리기 직전이다. 미국 상무부가 제시한 ‘죄질이 나쁜’ 12개국을 골라 54% 관세 폭탄을 매기는 권고안에는 한국이 올라 있다.

지난번 세이프가드에도, 이번에도 트럼프의 관세 폭탄을 일본은 피했다. 둘 다 미국의 동맹국인데 왜 대접이 다르냐는 의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세상이 뉴노멀(new normal)로 급격하게 이동했음을 모르는 사람이다.

냉전 시대에는 통상이 안보를 해결하는 수단이었다. 미국이 주도한 다자경제질서는 자유 진영을 통상으로 결속해 공산권과의 냉전 대결에서 평화를 확보하는 대외전략의 핵심이었다. 중국을 포용하고 미국 시장을 내준 것은 통상으로 경제발전이 된 중국이 고립된 핵무장 중국보다 세계 평화에 덜 위협적인 존재일 것이라는 전략적 구상 때문이었다. 태평양 전쟁의 적이던 일본에 대해서도 같은 계산이었다. 1980~1990년대 미국이 무역적자를 이유로 일본, 한국과 통상으로 갈등할 땐 협상이 결렬돼도 미국과의 안보동맹은 굳건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통상과 안보의 밀월시대는 끝났다.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중국의 부상 때문이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란 카드를 꺼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 대응했다. 한국은 TPP 참여를 주저했고 일대일로와 AIIB에는 참여했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프레임을 설정했다. 트럼프는 오바마보다 더 중국을 거칠게 다룬다. 그에게 안미경중 프레임은 무임승차로 치부된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고비마다 어떤 선택을 했는지 지켜보고 있다.

#1.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한국 정부는 항의조차 못하고, 심지어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카드를 사용하지 않겠다며 백기 투항했다. 한류 열풍을 타던 한국 제품이 날벼락을 맞고, 서울 명동과 제주에 가득하던 중국 관광객이 별안간 실종되는 사태 속에서도,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가 관여한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기술적 어려움’ 뒤로 숨었다.

#2. 지난해 11월 서울에서의 한·미 정상회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핵심축임을 강조했다”는 공동언론발표문을 두고 청와대는 “우리가 동의했다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중국을 에워싸는 식으로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구상에 한국이 낄 필요가 없다고 청와대 당국자는 선을 그었다.

#3. 작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WTO 통상장관회의.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은 통상질서를 파괴하는 과잉생산설비 국가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을 겨냥했다는 것은 불문가지인데, 정작 중국산 과잉설비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한국은 이 성명에서 빠졌다.

#4. 지난해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중 베이징대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그 꿈(시 주석이 제시한 중국몽)에 함께할 것입니다”라는 연설은 촛불 시민혁명이라는 국민의 명령에 따라 집권한 정부의 도덕적 정당성, 인권의 중요성을 외치던 당당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 정가에서는 “한국은 중국의 궤도 안에서 돌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다. 문 대통령의 “안보 따로, 통상 따로” 대처 방안은 뉴노멀 시대에 해법이 될 수 없다. 트럼프에겐 무임승차로만 보일 따름이다. 무임승차에 그는 혹독한 요금청구서를 발부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처 방안이 바뀌든지, 상대방이 바뀌든지, 아니면 충돌은 계속 이어지고, 그 파편들은 고스란히 한국 국민에게 쏟아질 따름이다. 설마 트럼프의 탄핵이 해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byc@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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