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word
지난해 4월 미국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세계 무역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거래는 이전보다 비싸졌고, 규칙은 복잡해졌습니다. 관세와 수출통제도 이제는 예외적인 조치라기보다 강대국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상시적 정책 수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자통상체제의 상황도 녹록지 않습니다. 지난 3월 열린 제14차 WTO 각료회의에서는 WTO 개혁을 둘러싼 합의가 무산됐습니다. 지난 80년 가까이 세계 무역을 지탱해 온 규칙에는 균열이 커지고 있지만, 이를 대신할 새로운 질서는 아직 뚜렷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규범의 공백은 통상국가인 한국에 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미국과 중국을 합하면 한국 전체 상품교역의 약 35%를 차지합니다.
두 나라와 모두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지만, 협정만으로 관세와 수출통제 같은 새로운 통상장벽을 충분히 막아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2025년 기준으로 한국의 가장 큰 교역 상대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보면 미국도 중국도 아닌 CPTPP 12개 회원국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과 CPTPP 회원국 간 교역은 3,410억 달러로 전체 상품교역의 25%에 이릅니다. 중국 20%, 미국 15%보다 각각 큽니다. 이미 가장 큰 교역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데, 정작 그 관계를 하나로 묶어 규율하는 제도에는 한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정부는 지난 8월 27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계기로 CPTPP 가입 추진에 관한 공론화에 착수했습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한국은 2013년과 2021년에도 가입을 검토했지만 국내 사정으로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시도입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한국경제인협회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난 8월 31일 국제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CPTPP 가입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반대로 감수해야 할 비용은 무엇인지 차분하고 균형 있게 따져보자는 취지입니다. 과거 두 차례 논의가 중단된 경험이 있는 만큼 또다시 실기(失期)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번 세미나에는 힌리히재단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를 비롯해 유럽·일본·호주·영국의 통상 전문가들이 참여해 변화하는 세계 통상질서와 CPTPP의 역할, 그리고 한국의 선택을 놓고 폭넓은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번 KERI FOCUS는 그 논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개방형 복수국 협력’의 대표적 사례인 CPTPP가 앞으로의 세계 통상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변화가 한국 기업과 산업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